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膠
갖풀 교, 아교 교
한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가 위화도 회군입니다. 고려의 우왕(禑王)이 명나라를 치고 싶어하자 이성계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말했는데 이것을 사불가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왕은 이성계에게 명나라 공격 명령을 내렸고, 이성계는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가다가 압록강에 있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개경으로 돌립니다. 이 사건이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지요.
이성계가 말한 사불가론 중 네 번째 항목은 "장마철이라서 활에 붙인 아교가 떨어진다" 였습니다. 아교는 소나 당나귀 가죽, 물고기 부레 등을 원료로 해서 만든 한약재 겸 접착제로, 접착력이 좋지만 습기에 약한 것이 단점입니다. 아교는 한자로 阿膠(언덕 아, 갖풀 교)라고 쓰는데 앞의 언덕 아(阿)자는 아교로 유명한 중국 산동성의 동아현(東阿縣)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따 온 글자이고 뒤의 갖풀 교(膠)가 접착제라는 뜻입니다. 교(膠)를 한자사전에서 찾으면 보통 '아교 교'라고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아교 교(膠)의 뜻이 아교라는 말이 되어 일종의 순환 참조가 되기에 순우리말인 갖풀을 써서 갖풀 교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교는 뜨겁게 하면 녹고 차갑게 하면 굳는데, 이런 성질이 플라스틱과 비슷해서 그런지 현대 중국어에서는 플라스틱을 갖풀 교(膠)를 사용해서 塑膠(소교)라고 부릅니다. 塑가 '흙 빚을 소'이니 소교는 풀어보면 '모양을 빚을 수 있는 아교'가 되겠습니다. 플라스틱에는 녹았다 굳었다를 반복할 수 있는 열가소성(熱可塑性) 플라스틱과 한 번 모양이 정해지면 열을 가해도 녹지 않는 열경화성(熱硬化性) 플라스틱이 있는데, 열가소성이라는 말에도 흙 빚을 소(塑)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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