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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在香港 (6) 北京-중국의 菜都

기사입력 2003.01.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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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에 있으면, 그 넓은 중국을 짧은 시간에 보기 위해서 꼭 가야한다면 어디어디를 가봐야 하느냐고 많이 물어온다. 그러면 나 나름대로 정답이 있다. 과거의 중국을 보고 싶다면 西安으로 가보시고 미래의 중국을 보고자 한다면 上海를 빼 놓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은 단연 北京입니다. 그렇다, 北京은 현재의 중국이다. 중국의 중추신경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북경이다. 중국의회인 인민대회당에 각 지방(省)의 고유 회의실이 모두 갖추어져 있듯이 북경의 주요 거리에는 각 지방의 대표적 음식이 모두 선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북경요리를 북경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옛날부터 북경요리의 쌍벽으로 베이징 카오야(北京火考)와 수안양루(水+刷羊肉)를 친다. 그리고 북경은 수 백년간 중국의 황궁이 있었던 곳이다. 북경의 심장부 中南海인근 北海의 仿膳飯蔣은 과거 궁중요리가 어떠했는가를 알게 해준다. 그러나 北京은 중국수도이면서 음식의 수도(菜都)이기도 하다. 수 백년간 정치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각 지방 음식이 모두 모여있다. 중국역사를 보면 북경이 본격적인 중국 대륙 전체의 정치중심이 된 것은 유명한 징기스칸의 몽골족이 세운 元나라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漢족이 세운 나라의 수도가 된 것은 明나라 3대 영락황제부터이다(1402). 영락은 자신의 아버지 明太祖 朱元璋이 지금의 南京을 수도(1368년)로 한 것을 주원장이 죽은 후 군사 쿠데타(政變)을 일으켜 큰 형님의 아들 建文帝를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고 스스로 황제가 된 사람이다(1402). 그러나 당시 어린 황제가 정변의 혼란 속에서도 죽지 않고 탈출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영락은 언젠가 자신의 조카인 건문제 가 반격해 올 수 있다는 不安과 조카로부터 國權을 찬탈한데 대한 남경보수세력의 반발을 두려워하여 皇都 남경을 버리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당시로는 북쪽 변방으로 옛 元나라 수도였던 폐허 大都로 천도하였다. 영락은 이곳에 새로이 황궁(紫禁城)을 짓고 북쪽 몽골고원으로부터 元의 잔존세력의 再侵을 막기 위해 북경북쪽 八達嶺 등에 萬里長城을 보수하여 안전을 기한다. 이때부터 북경이 사실상 중국의 정치 중심이 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 山海關을 넘어온 淸이 明을 정복하여 황궁과 모든 시설을 그대로 승계, 사용하게 됨에 따라 中國의 중심은 계속 北京에 머물게 되었다. 특히 淸은 小數민족으로 거대한 漢족을 지배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漢족 가운데 지방의 豪族에게 벼슬자리를 주고 中央 즉 北京에서 거주하여 지방의 반란을 막았다. 북경시내의 二環路는 당시 북경성곽이 있었던 곳으로 그 안쪽으로는 지배족인 만주족이 살았고 북경의 남대문 격인 正陽門 바깥에는 한족이 집단 거주하였다. 그리고 각 지방에서 올라온 한족은 자기고향의 고유 음식까지 가져 왔다. 북경에서 유서 깊은 호텔이 있다. 베이징 판디엔(北京飯店). 그 곳 1층에는 광동요리로 유명한 譚家菜樓가 있다. 淸朝에 광동인 譚宗浚이라는 사람이 북경에서 벼슬을 하게되자 담씨 집안은 요리사를 포함 一家가 모두 북경으로 옮겨와서 살았다. 처음에는 담씨 일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광동요리가 청조가 망하면서 譚家의 요리사들이 북경의 西單지역에서 개업하였다. 그들은 북경식의 짠 음식 속에 신선한 생선과 야채를 듬뿍 사용하는 건강식 광동요리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新中國 건립 후 당시 주은래 총리가 이 요리를 특히 좋아하여 베이징 판디엔 일각에 담씨 집안의 음식(譚家菜)을 내도록 하였다고 한다. 御 膳 房 北京이 菜都라고 부르는 것은 지방음식을 모두 북경에서 맛볼 수 있으나 지방에는 없는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中國 황실요리인 御膳이 그것이다. 북경의 중심지에는 남북으로 인공호수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 中南海, 북쪽으로 北海가 자금성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北海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다. 북해가 본래 황실의 후원(秘苑)이었므로 이 건물도 본래는 황실 후원의 한 전각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仿膳飯蔣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이름 그대로 황제가 드시는 음식(御膳)을 모방하여 요리하여 파는 음식점이다.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였지만 마지막 황제 부의가 떠날 때까지(1925) 자금성에는 황제와 그의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황실 주방(御膳房)이 있었다. 지금은 방선반장에서 御膳을 만들어 내어 일반인에게 맛을 보이고 있다. 방선반장의 내부장식은 자금성의 황실을 모방하였다. 황제보좌도 만들어 놓았으며, 음식을 날라다 주는 여자 종업원은 모두 울긋불긋한 황제궁녀의 복장을 하고 있다. 훤칠한 키에 미모의 여자 종업원들이 입고 있는 전통 중국 의상은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은 외국 관광객을 위한 기념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방선반장의 메뉴는 본래 궁중연석인 만한전석 중 일부가 간편하게 요리된 것이 많다. 그러나 일반 음식점에서 주문되는 가정식요리(家常菜)도 주문이 가능하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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