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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수요저널 창간 20주년 기념 인터뷰 - 강봉환 민주평통 홍콩 지회장▲ 강봉환 민주평통 홍콩 지회장 홍콩수요저널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발행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토요학교장,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 홍콩한인회장을 역임하시고 최근까지 민주평통 홍콩지회장을 역임하신 강봉환 회장님께 수요저널에 대한 추억과 격려 메세지를 부탁드렸습니다. 홍콩 한인 역사에 빠질 수 없으신데, 회장님의 홍콩생활 초창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덧 홍콩생활이 30년이 되어가네요. 저는 1986년에 홍콩에 주재원으로 나와서 1991년 말부터 개인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리가 어느정도 잡히면서 1990대 중반부터 한인회 이사로서 본격적으로 한인 사회에 참여해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두고 여러가지 홍콩의 사회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면에서 기복이 있었습니다. 그당시 중국 개방이 된지 오래되지 않아서 홍콩 교민들의 대중국 비지니스 여건이 (수익부문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고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한인사회 내부로는 홍콩한국국제학교 설립이 가장 큰 이슈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에 따른 제반 기금 모금을 위해 선배 한인회장님들이 다방면으로 동분서주 했던 시절이섰지요. 각 주재상사, 금융기관, 교민들께 많은 빚을 졌지요. 또한 그 당시 교민 야유회, 체육대회 등이 있었는데 상당히 결집력도 있었고 재미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20년전 수요저널의 초기 발행 당시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럼요. 홍콩뉴스가 한글로 번역되어 매주 나오니까 매주 식당에서 읽었지요. 당시 소식지로는 유일했던 한인회의 ‘교민소식’은 집으로 배송되어 편리하긴 했지만, 수요저널은 주위에서 아무나 쉽게 받아 볼 수 있었지요. 수요저널을 접하고 시기적절하게 교민들께 유익하고 필요한 주간지가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니 저도 기쁘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토요학교장, KIS 이사장, 홍콩한인회장과 민주평통 지회장 등으로 오랫동안 헌신하셨는데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홀가분하고 편안합니다. 한인회 이사로 시작해서 토요학교장,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 홍콩한인회장에다 민주평통 홍콩지회장을 끝으로 약 15년 정도 (한인사회 임원을) 한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했지요? 속된 말로 한번 발을 담그니 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지난 일을 회고해 볼 때, 대과없이 마칠 수 있었고 홍콩에 살면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게 저에게 보람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짐들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기분으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업무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아마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이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도 겪고 학생들도 많이 줄면서 학교를 구조조정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특별히 국제과정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앞두고 학부모님들과 자주 회의도 하면서 학교 경영 개선에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3년동안 적자에서 흑자로 올라서고 안정화되면서 정말 큰 보람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때 함께 애써준 학부모님,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인사회에서 한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글쎄요. 노하우라니 말도 안되지요. 제가 남들처럼 딱히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그저 열심히 했고 주위에 여러분들이 도와준 덕분이지요. 그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변화와 이동이 많은 해외 한인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는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관계에 치우치지 않는 그런 신뢰말입니다. 오늘의 수요저널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앞으로 수요저널이 가야할 조언을 해 주신다면? 조그만 한인 사회에서 물의없이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강조할 말이 있다면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홍콩 사회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주간지로써 지금까지 걸어온 대로, 앞으로도 어느 곳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보도만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수요저널의 창간20주년을 축하드리고, 교민들께 재미있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유익한 주간지로 나날이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글정리 사진 / 손정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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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한인사회와 언론환경 변화의 기로에 서서- 홍콩 교민신문 편집장의 독백 (1)(고민이 많다. 교민신문사 편집장 자리는. 홍콩의 한인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수요저널. 올해로 창간 20년을 훌쩍 넘겼다. 몸을 담은지 5년이 지났지만 한 점에 불과하다. 다행이라면 변화의 각도를 트는 한 점에 서 있다는 것. 현재 편집장으로서, 홍콩교민으로서 품고 있는 고민을 읊조려본다...) 작은 한인사회와 언론환경 변화의 기로에 서서 글 손정호 편집장 언론 환경은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언론의 다양한 기능을 사회과학 관점으로 바라보던 시절은 20년전 나에게 언론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과의 추억으로 지나간 듯 하다. 그때는 주요 신문방송에만 보도되면 큰 영향을 주었고, 그런 모습을 자랑스러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언론사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뉴스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 손안에서’ ‘내 마음대로’ 터치하며 누리는 시대다. 철저하게 정보 소비자 우선으로 바뀌었다. 뉴스 제공자의 권위는 이미 사라졌고 유통업자(포털, SNS플렛폼)의 영향이 더 커졌다. 빠른 인터넷 처리속도와 모바일기술, 글로벌로 다양화된 문화, 다양한 언론창구, 개인화된 생활패턴 등은 기존의 언론 성향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언론이 예전처럼 어쭙잖게 전통과 권위를 앞세우면 ‘밀어버리거나’ ‘팔로우 취소’를 당한다. 종이에 잉크도 못 찍고 사라진다. 수요저널도 이런 변화의 회오리속에 있다. 7백만 홍콩인들 사이에서 1만명 조금 넘은 작은 한인사회를 위해 어렵사리 종이신문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홍콩에서 3개의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 대형 일간 신문사 한 곳과 무가지신문 두 곳이다. 남은 신문들도 지면을 많이 줄였다. 예전에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지금은 존재가 어려워졌다. 수요저널도 홍콩 경제에 좌지우지되는 한인사회에 의존하며 운영된다. 한인사회가 작아지면 그만큼 광고시장이 줄기 때문에 치명타를 받는다. 때문에 한인사회가 활성화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기업이다. 수요저널은 1995년 한인들에게 홍콩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해 주간 타블로이드판으로 만들어져 홍콩정청에 정식 등록된 주간 한글신문이다. 흑백 4면으로 시작해 면수를 조금씩 늘이고 칼라로 전환했다(현 20~24면). 홍콩 주요 언론에 나오는 영어기사, 중국어(번자체)기사, 생활정보를 한글로 번역해 매주 한식당과 한국학교, 교회나 성당 등 한인들이 밀집된 곳에 무표 배포한다. 한국서 온 일간신문 사이에 삽지되어 회사와 가정에도 전달되기도 한다. 홍콩 한인사회도 60여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80~90년대부터 무섭게 성장한 중국 경제에 의존해 홍콩 한인들은 많은 기회를 누렸다. 90년대말 금융위기 시기에도 반등한 환율차로 고국에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무역, 물류, 섬유, 장난감, 전자 등 한 시대를 풍미하던 주요 사업도 있었다. 크게 내세울만한 비지니스가 아니더라도 홍콩인들이 점유하지 못하는 작은 틈새속에서 한인들은 쏠쏠한 수익을 올리며 존재해왔다. 최근 몇년간 뜨겁게 인기를 얻은 한식 요식업종은 미디어의 힘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홍콩인들이 알아주지 않던 한국음식, 한국대중문화, 한국어 등이 홍콩의 새로운 핫비지니스로 관심을 받으면서 한인사회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이너리티 한인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전에 없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시장성이 확인되는 순간 실리에 밝은 홍콩인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금새 변하기 때문이다. 이미 홍콩인들이 개업한 현지화된 한국식당이 선보이고 있고, 한인 식품점보다 훨씬 더 싼 가격의 식품점들이 체인으로 들어섰다. 일반 슈퍼체인망뿐만 아니라 유명방송국과 연계된 인터넷쇼핑몰도 등장했다. 물론 일반 한인들은 한국 상품들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게 되었지만, 한인사회의 경제를 지탱하는 한인 자영업자들은 더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한인들끼리 경쟁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홍콩인과 붙어야할 전면전도 멀지 않았다. 한인사회에 의존하고, 종속된 교민신문은 언론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할까. 결론을 말하자면 따뜻한 관심과 사랑뿐이다. 너무 뻔하고 나약해 보이는 말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생각은 그렇다. 언론의 가장 큰 미덕이자 무기인 사회감시, 비판 기능은 작은 한인사회를 갈라놓고 벽을 쌓게 만든다. 똘똘 뭉쳐서 힘을 합해도 작은 소수민족 취급받는 마당에, 날카로운 칼날은 한인사회를 더욱 모나게 만들 뿐이다. 전문 정치가는 전무하고, 전문 행정가도 소수다. 딱히 공인이라고 할 사람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기관장들도 홍콩에서 생업을 겸업하고 잠시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우리 이웃들이다. 교민신문은 교민들이 잘 살 수있게 해주는 현지 정보전달 기능에 최우선을 두어야한다. 홍콩의 정치, 경제변화와 사회현상을 긴밀하게 관찰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한인사회의 소통을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요저널은 그렇게 지내왔다. 선대 편집장(故 이은미 님)의 뜻이 여전히 녹아있다. 홍콩뉴스와 홍콩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며 지면 대부분을 채워왔다. 한인사회의 작은 목소리를 소중하게 담고 한인 자영업자들의 홍보를 위해 애써왔다. 그 방법이 서툴거나 부족한 것은 부족한 현 편집장과 열악한 인력탓으로 돌려달라고 변명드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요저널은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홍콩 자체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며, 한인사회에대한 사랑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말 홍콩에 처음 왔을 때, 또래 젊은이들은 만나려면 눈을 씻고 찾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학생이 1천명에 육박하고 워홀러도 5백명이나 된다. 현재 한인 인구 10명중 1명은 20대인 셈이다. 이들은 곧 홍콩의 주역이 될 사람들이다. 젊어진 한인사회와 이 젊은이들에게 더 재미있고 더 빠르게 필요한 뉴스, 정보를 전할 것이다. 그것이 수요저널이 제일 잘하는 일이며, 더불어 젊어지는 방법이다. 미래의 주역이 될 홍콩 유학생, 워홀러, 인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의 머리속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변화하는 언론환경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두렵다기보다 설레는 기분이다. 새로 런칭하는 벤처사업가가 된 것 처럼. 어제의 꿈과 오늘의 꿈은 달랐다. 내일의 꿈은 내년의 꿈과 또 다를 것이다. 이것이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홍콩수요저널 편집장의 독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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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수요저널 창간 20주년 기념 인터뷰 - 강봉환 민주평통 홍콩 지회장▲ 강봉환 민주평통 홍콩 지회장 홍콩수요저널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발행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토요학교장,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 홍콩한인회장을 역임하시고 최근까지 민주평통 홍콩지회장을 역임하신 강봉환 회장님께 수요저널에 대한 추억과 격려 메세지를 부탁드렸습니다. 홍콩 한인 역사에 빠질 수 없으신데, 회장님의 홍콩생활 초창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덧 홍콩생활이 30년이 되어가네요. 저는 1986년에 홍콩에 주재원으로 나와서 1991년 말부터 개인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리가 어느정도 잡히면서 1990대 중반부터 한인회 이사로서 본격적으로 한인 사회에 참여해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두고 여러가지 홍콩의 사회적인 변화와 경제적인 면에서 기복이 있었습니다. 그당시 중국 개방이 된지 오래되지 않아서 홍콩 교민들의 대중국 비지니스 여건이 (수익부문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고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한인사회 내부로는 홍콩한국국제학교 설립이 가장 큰 이슈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에 따른 제반 기금 모금을 위해 선배 한인회장님들이 다방면으로 동분서주 했던 시절이섰지요. 각 주재상사, 금융기관, 교민들께 많은 빚을 졌지요. 또한 그 당시 교민 야유회, 체육대회 등이 있었는데 상당히 결집력도 있었고 재미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20년전 수요저널의 초기 발행 당시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럼요. 홍콩뉴스가 한글로 번역되어 매주 나오니까 매주 식당에서 읽었지요. 당시 소식지로는 유일했던 한인회의 ‘교민소식’은 집으로 배송되어 편리하긴 했지만, 수요저널은 주위에서 아무나 쉽게 받아 볼 수 있었지요. 수요저널을 접하고 시기적절하게 교민들께 유익하고 필요한 주간지가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니 저도 기쁘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토요학교장, KIS 이사장, 홍콩한인회장과 민주평통 지회장 등으로 오랫동안 헌신하셨는데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홀가분하고 편안합니다. 한인회 이사로 시작해서 토요학교장,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 홍콩한인회장에다 민주평통 홍콩지회장을 끝으로 약 15년 정도 (한인사회 임원을) 한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했지요? 속된 말로 한번 발을 담그니 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지난 일을 회고해 볼 때, 대과없이 마칠 수 있었고 홍콩에 살면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게 저에게 보람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짐들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기분으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업무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아마 홍콩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이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도 겪고 학생들도 많이 줄면서 학교를 구조조정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특별히 국제과정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앞두고 학부모님들과 자주 회의도 하면서 학교 경영 개선에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3년동안 적자에서 흑자로 올라서고 안정화되면서 정말 큰 보람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때 함께 애써준 학부모님,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인사회에서 한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글쎄요. 노하우라니 말도 안되지요. 제가 남들처럼 딱히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그저 열심히 했고 주위에 여러분들이 도와준 덕분이지요. 그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변화와 이동이 많은 해외 한인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는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관계에 치우치지 않는 그런 신뢰말입니다. 오늘의 수요저널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앞으로 수요저널이 가야할 조언을 해 주신다면? 조그만 한인 사회에서 물의없이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강조할 말이 있다면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홍콩 사회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주간지로써 지금까지 걸어온 대로, 앞으로도 어느 곳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보도만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수요저널의 창간20주년을 축하드리고, 교민들께 재미있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유익한 주간지로 나날이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글정리 사진 / 손정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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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홍콩도서박람회에 대교홍콩 참가[[1]]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홍콩전시컨벤션센터에서는 2007년 홍콩도서박람회가 개최되었다. 20개국의 475업체가 참가한 이번 박람회에는 방대한 양의 도서뿐만이 아니라 교육용 소프트웨어, 어린이용 오디오, 멀티미디어 전자책과 학용품 등이 함께 전시되었다. 지난해 68만 명의 관람객들을 유치하였던 홍콩도서박람회는 올해 역시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가족들과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번 박람회에는 한국 업체로서는 유일하게 대교홍콩이 참가하여 E.nopi Math(대교홍콩 수학프로그램)를 홍보함으로써 현지 관람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2]] 서정미 대교홍콩 지사장은 이번 북페어 참가를 통하여 2003년부터 진행된 홍콩 현지화 마케팅을 통하여 60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대교홍콩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E.nopi Math의 신규고객을 창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최기간 동안 연일 홍콩뉴스를 장식했던 2007 홍콩 도서박람회에는 도서전시 및 판매 뿐만 아니라 행정장관 도날드 짱의 도서 사인회 개최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마련하여 교육 및 문화 박람회로서의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받으며 내년을 기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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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부디스트 칼리지, 홍콩에서 최초로 한국어과 신설香港能仁學院(大學制)에서는 2000年度 9월학기부터 한국어학과를 신설해 신입생 20명을 뽑는다. 입학자격은 F5, F6, F7과정을 마친 학생과 F4과정을 수료하고 본교 부설 한국연구센터에서 1년 이상 한국어 강좌를 수강한 자를 우선 입학이 허가된다. 한국어학과에서 4년 동안 이수해야 할 학점은 공통필수 28학점, 전공필수 60학점, 전공선택 48학점, 총 136학점 중, 128학점만 따면 졸업이 된다. 학비는 HKD 20,000$ (10개월). 학과수업은 문학박사 김광석 교수(전북군산시 출생)가 맡는다.(전화: 자택:24023129 Fax: 24023194, 학과연구실:27207786, 학교주소:九龍深水포보 가지곡도 325-329 4/F.) 이 학교 한국 연구센타에서 현재 강의 중인 한국어 강좌는, 한중비교문화, 고급한국어, 실용한국어 등이 개방적으로 강의중에 있다. 본교 中國文史學科에서는 한국학생 약간 명을 모집중에 있기도 하다. 입학자격은 대학1학년(고등학교졸업자) 대학3학년(대학2년 수료자, 전문대학 졸업자) 대학원 석사과정(학사학위 소유자), 박사과정(석사학위 소유자) 등이다. 학비는 대학제가 HKD 20,000$ (10개월), 석박사과정이 HKD 25,000$ (10개월)이며, 강의 언어는 중국어, 광동어, 한국어이다. 기초교양과목과 약간의 전공과목을 김광석 교수가 한국어로 강의한다. 이 학교는 1968년 홍콩불교승가연합회에서 설립한 사립고등학부 (대학제, 대학원제)이다. 금년도 조성된 학과는 영문학과, 문사학과, 철학과, 한국어과, 기업관리학과, 통신관리학과이며, 대학원 과정으로는 문학석사과정, 철학박사과정 등이 있다. 이 학교는 대만 교육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대만제 해외 국제대학이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김광석 교수는 1944년 전북 군산시에서 출생, 건국대(학사) 고려대 (석사), 사립원용학원 (박사:대만교육부에서 학위 인준)을 나오고, 국방부 군사연구원, 전남대, 호성대 강사, 호남대 전임강사 등을 역임했으며, 홍콩부디스트 칼리지 부교수(대만교육부에서 대학제 부교수 심사에 합격), 홍콩 최고법원 중국어, 광동어 통역원을 했었다. 현재는 KBS 홍콩뉴스 통신원, 중국문제 평론가(100회 방송 평론), 홍콩 노동조합 부설 직장인 재교육 센터 한국어 위탁교수로 있다. 석사학위논문으로는 고려사에 보이는 발해관계 기사어 연구(1980년 2월 고려대) 박사학위논문으로는 발해 국어 형성과 사회형태 연구(1991년 11월 원용학원) 가 있으며 현재 연구제목은 중한비교문화, 중국 1국 2체제 연구. 저서로는 중한대로, 한국어 강좌(1998년), 중한비 교문화(2000년 3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