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거부’ 리샤오키, 97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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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거부’ 리샤오키, 97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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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 랜드 개발의 창립자 리샤오키 회장이 17일 밤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리샤오키는 한때 세계에서 네 번째로 부유한 인물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로 알려졌다. 헨더슨 랜드는 그의 장례식 일정은 추후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개발사는 리를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로 묘사하며 그의 넓은 인맥을 강조했다.

 

존리 행정장관은 리 회장을 "뛰어난 비즈니스 리더이자 기업가"라고 칭하며, 홍콩의 경제 발전과 번영, 안정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리샤오키 회장은 2007년에 홍콩의 최고 영예인 그랜드 바우히니아 메달을 수상했다.

 

존 리 행정장관은 "리샤오키 회장은 교육과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뛰어난 자선가로, 수년간 홍콩과 본토의 여러 대학 및 고등 교육 기관에 관대하게 기부하며 고등 교육과 인재 양성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가 설립한 리샤오키 재단과 홍콩 포화 교육 재단은 교육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 공동체의 교육 및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사촌 아저씨'로 알려진 리샤오키 회장은 20세기 중반 홍콩으로 이민 온 중국 타이쿤 세대의 일원으로, 그 시기 본토에서의 혼란 속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홍콩 비즈니스의 거부가 되었다.

 

1928년 광둥성 순더에서 태어난 리 회장은 통화 및 금 거래로 경력을 시작한 후 부동산으로 진출했다.

 

1958년, 그는 저명한 중국 사업가인 곽탁생과 펑킹헤이 등 7명의 파트너와 함께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5년 후, 그는 곽과 펑과 함께 홍콩 최대 개발업체인 선홍카이 프로퍼티스를 설립했지만, 1976년 헨더슨 랜드를 창립하기 위해 떠났다. 이들은 '삼총사'로 불렸다.

 

리샤오키 회장은 날카로운 시장 통찰력과 결정적인 리더십을 통해 회사를 홍콩의 주요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시켰으며, 주거 및 상업용 부동산, 인프라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운영했다.

 

그는 헨더슨, 홍콩 및 중국 가스(타운가스), 미라마르 호텔 및 투자사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SHKP의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동아시아은행, 홍콩 페리, 유니온 병원 등의 이사로도 재직했다.

 

리샤오키는 홍콩 특별행정구 준비위원회의 선거위원회 위원 및 순탁 형제회 명예회장 등 공공 서비스 역할에도 참여했다. 헨더슨은 그의 자비와 자선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며 "리 박사는 공정함과 진실성을 지킨 리더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관대함과 리더십의 유산은 우리에게 영원한 영감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재단을 통해 리는 교육 및 지역 사회 복지에 집중하여 자선 활동에 헌신했으며, 그의 기부는 수십억에 달했다.

 

리샤오키는 2019년 91세에 헨더슨 랜드와 타운가스의 회장에서 물러나 두 아들인 피터 리 카킷과 마틴 리 카싱에게 각각 본토와 홍콩 사업을 맡겼다.

 

재무장관 폴 찬 모포, 개발장관 버나데트 린 혼호, 주택장관 위니 호 윙인, 교육장관 크리스틴 초이 육린이 리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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