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설 단’의 주인공 우학도인이 바로 우리 할아버님이십니다.”
1985년 정신세계사에서 출판된 김정빈의 실명선도소설 ‘소설 단(丹)’은 1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80년대 한국 사회에 단학, 선도 열풍을 일으켰다. 홍콩과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게 됐냐고 묻자 대동한의원 권영국 원장은 서가에서 ‘소설 단’을 꺼내들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바람에 청와대에서 할아버지를 초청을 했어요. 그때 할아버지를 따라 저도 같이 청와대에 들어갔었죠. 전두환 대통령께서 88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10위 안에 들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자 할아버지께서 5위 안에 들 거라고 예언을 하셨죠. 기억하시겠지만 실제 우리나라는 88올림픽 때 4위를 했습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었죠. 먼저 우리나라 대표선수들 기를 보해야 한다고.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께서 할아버지한테 대표선수 보약을 지어달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지난 94년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소설 단’의 주인공 우학도인 권필진 옹(본명 봉우 권태훈)이 바로 권영국 원장의 할아버지였던 것. 대표선수들 보약을 지으라는 ‘어명’을 받은 할아버지가 약재를 구하기 위해 찾은 곳이 홍콩이었고, 그 또한 그 때문에 홍콩에 따라왔었다고 했다.
“한약재 중 한국에서 나는 것은 전체의 30퍼센트도 되지 않아요. 게다가 같은 약재라도 원산지에 따라 그 효능,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계피라도 다 같은 계피가 아니에요. 베트남에서 나는 계피는 신계라고까지 부르는데 일반 계피보다 100배 이상 비쌉니다. 중국 쓰촨에서 나는 약재는 또 약효가 신통하기로 유명하지요. 녹용도 요즘은 뉴질랜드산을 쓰지만 중국산 녹용은 원용, 마록이라고 해서 다른 녹용의 두 배값이 넘지요. 그런 제대로 된 약을 구해 국가대표 선수들 체력 증진을 위해 쓰자고 처음 왔던 겁니다.”
그렇게 처음 홍콩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94년, 홍콩에서 좋은 약재를 찾아 한국으로 수출해보자는 생각에 홍콩으로 건너왔다. 약재상을 하러 온 길이었지만 당시 홍콩에 맥을 보는 사람이 없던 터라 교민들이 그를 찾아와 진맥을 부탁하곤 했다고. 그 덕에 홍콩에 한의원을 열게 됐는데, 외국인으로서 홍콩에서 중의 면허를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홍콩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2006년 한국에 있던 대동 한의원 문을 닫기 전까지 그는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살았다.
“이제는 은퇴할 때까지 홍콩에 있을 생각이에요. 아이들도 다 컸고 크게 오고갈 일이 없어요. 사실은 얼마전 우리 딸(규림 한의원 목동점 권혜진 원장)도 한국에서 한의사로 개업을 했어요. 할아버지도, 아버님도 다 한의사셨으니까 가업을 4대째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에게 홍콩에서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 좋냐고 묻자 그는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실천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신토불이’의 ‘토(土)’가 홍콩에서는 홍콩의 ‘토’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한식당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홍콩은 풍습한 나라라 한국식 식습관을 홍콩에서 유지하는 것은 건강에 오히려 좋지 못해요. 광둥식이라는 것은 이 땅의 기후와 풍토에 맞춰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거예요. 기름이 많아서 느끼하다고 하는데 홍콩 사람들의 성인병 비율을 보면 한국보다 오히려 낮습니다. 광둥식은 열량은 높이면서도 기름기는 줄인 음식이에요. 가령 돼지고기 튀긴 것도 보세요. 삶아서 나쁜 지방을 빼낸 뒤 다시 튀기거든요. 북쪽 요리가 기름기가 많지, 광둥식은 기름기가 오히려 적어요.”
그는 덧붙여 한약에 대한 잘못된 속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녹용을 먹으면 살 찐다고 하는 데 그것도 잘못된 말이에요. 장이 약하면 먹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잘못된 속설입니다. 녹용값은 한국에 비해 반값정도 밖에 안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맞는 영약이거든요. 애들에게 안좋다고도 하는데, 저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녹용을 먹고 자랐는데 키도 크고 얼마나 건강한지 몰라요. 저도 1년에 4~5번은 보약을 먹습니다. 건강은 아프기 전에 챙기는 게 정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