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홍콩에서 살기 전 타이페이에 근무할 때였다. 나이가 열두살 띠동갑 형뻘이었던 현지인 까오 선생이 나를 데리고 한달에 한번씩 이민국에 가서 내 비자를 연장을 도와주어야 했다. 물론,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은 혈맹으로, 맹방으로 수교국이라 맨날 입으로는 형제지국 어쩌고 했지만, 실제로 그곳 교민들의 생활은 작고 작은 비자마저 한달에 한번씩 다시 찍어야 하는 수고가 극심했으니, 이유는 바로 그러했다. 60년대 우리 정부(군사정부)가 한국의 화교들의 재산을 규제했단다. 그들은 은행에 계좌를 만들수 없어...
대학 시절 나의 부끄러운 단상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그 때의 경험이 나에겐 세상과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엄청난 경험이었기에 부끄럽지 않다. 내겐 절실했었고, 그 이상의 결과를 준 일이다.밀레니엄을 앞둔 겨울 쯤인가. 대학 내 멀티미디어센터의 영상팀장, 신문방송학과 영상조교, 방송동아리학회...
1965년 10월 14일, 13세대 78명의 한인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에 도착하며 시작된 아르헨티나 한인 이민역사가 어느덧 5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5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인 인구도 3만 명으로 늘었고, 농업으로 시작한 아르헨티나에서의 삶은 현지 의류산업의 주류로 등극할 만큼 성장했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경제침체에서 비켜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르헨티나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도 방문을 앞두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헤...
어릴 적 내 꿈은 조종사든 정비사든 아무튼 ‘비행기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무동력 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 받은 장려상 하나가 짜릿한 흥분과 함께 나를 마구 그렇게 몰고 갔다. 비행기 날리기 대회가 없을 때도 나는 용돈을 모아 모형 비행기를 사서 날렸고,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원리인 ‘양력’이란 단어를 백과사전에서 찾아 공부했다. 나중에는 아무 설명서 없이 폐품으로도 준수하게 날아가는 모형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그 열정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이어져,...
‘레전드’. 보통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에서 그의 업적이나 영향력이 시대적으로 뛰어날 때 레전드라는 별칭을 붙입니다. 지난주 홍콩 한인사회에서 레전드로 감히 비유할 만한 분이 한국 귀국을 결정하셨습니다. 홍콩한인회장(33대, 1984~ 1986년)와 홍콩한인상공회장(2~3대, 1977~1981년), 홍콩한인체육회장(2대), 그리고 한국토요학교와 홍콩한국국제학교 설립에 가장 앞장 섰던 손상용(83) 고문님이 홍콩생활 50여년을 마치고 고향으로 귀국하게 된 것입니다. 3년전 팔순을 맞아 교...
며칠 전 아는 분의 소개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투자은행에 면접을 보았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몸값을 높이려면 이직을 적당히 해줘야하는데, 막상 이직을 하려고 하면 기회가 항상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그 회사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뉴스도 찾아보고... 일년 전에 지금 다니는 회사의 면접 준비를 하면서 면접용 질문과 답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수첩도 들여다보았습니다. 면접 당일, 점심 시간에 센트럴에 있는 그 회사로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침...
홍콩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작년 8월에 있었던 사건이 단연코 놀랄만하여 소개합니다. 제게는 동종업계에서 알게 된 특별히 친한 두 동생이 있어, 서로 자주 만나 생사를 확인합니다. 제가 첫째이고, 둘째, 막내가 있습니다. 그날도 저는 거래처와 저녁을 하고 늦은 10시쯤에 막내와 연락이 닿아, 더위를 식히고자 노천 까페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문득 둘째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였더니, 동문회를 마치고 곧 오겠다고 하더군요..11시쯤 둘째가 도착하여, 건배를 하던 중, 갑자기 ...
나는 지금 나이가 80세 입니다. 골프를 꽤 오래 쳤습니다. 오래전 빌 클린턴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입니다. 당시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한 도시에 살던 나는 어느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골프를 시작하기 전 클린턴을 미워하던 어떤 단체에서 예쁜 골프공을 골퍼(golfer)들에게 몇 개씩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공에는 대통령인 클린턴과 미백악관에 인턴으로 왔던 모니카 르윈스키의 예쁜 사진이 서로 마주보며 다정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클린턴과 르윈스키는...
우리가 이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만날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전혀 예기치 않은 만남도 상당히 많이 있음을 본다. 나에게 있어서 정현(가명) 자매와의 만남이 그렇다. 지난 4월 초에 센트럴 쪽에서 일을 본 후에 가끔 씩 들르는 두란노 기독 문화원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최영우 한인회장님 부부가 어느 한국인 자매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병문안을 가신다고 했다. 보통 때 같으면 난 그냥 집으로 갔을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회장님 부부와 함께 가고 싶어서 같이 병원에 동행...
어릴 때 아빠와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무슨 이유로 집이 아닌 곳에서 밥을 먹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간 것도 아니고 돈가스나 함박 스테이크의 경양식집도 아닌 갈비나 삼겹살의 고깃집도 아니었다. 약간은 허름하고 구식인 인테리어에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와 가운데 구멍이 뜷린 둥그런 식탁들, 이런 곳에 뭐 먹을 것이 있을까… 한참을 쳐다본 메뉴판에는 가정식 백반이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아빠, 백반이 뭐야?” “응, 가정식으로 밥이랑 국, 반찬이...
홍콩에 오기 전 패키지, 자유 여행으로 놀러온 적이 있다. 처음 받은 홍콩의 느낌은 눈으로 보는 것 보다 냄새로 먼저 다가왔다. 오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거꾸로 달린 오리와 닭의 희한한 냄새와 도심 뒷골목에서 훅 하고 와 닿는 후끈한 에어컨 바람은 홍콩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구나, 하는 답답함과 어지러움 뿐이였다. 그러던 내게 홍콩에서 살 기회가 찾아 왔다. 높은 아파트 속에 딱 키 만큼의 방 크기와 침대 하나 들어가면 의자도 놓기 어려운 상황, 아, 정녕 어쩌란 말인가? 홍콩...
홍콩에 맨처음 도착한게 1984년 겨울이었으니 30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나이 갓 한국 나이 스물 끝물이었으니까. 도착해서 일요일엔 교회에 찾아갔고, 그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 먼저온 선배님들 붙잡고 이것저것 한없이 문의했습니다. 모임이나 시간만 허락하면 쫒아가서 묻고 했더니, 그분들이 사사건건 도와줬습니다. 아마도 어린친구가 와서 살가웠던지 하여튼 그분들이 슬쩍슬쩍 도왔던 마지못해 해줬던 조언들은 처음 온 홍콩에 저에겐 돈보다 훨씬 값진 정보였고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 ...
지난 3월 26일자에 투고한 ‘한인 유학생들에게 드리는 조언’이 나간 후 메일 몇통을 받았습니다. 한 학생은 미국에서 자라서 홍콩으로 유학을 온 케이스였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자랐기에 한국에 대한 정체성을 못 느끼거나 중요하게 생각지 못했는데 저의 투고를 통해 격려를 얻었다는 메일이었습니다. 단순히 저의 우매했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쓴 글이었지만 학생들의 메일과 SNS를 통해 피드백을 받으면서 선배로서의 작은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학...
저는 상해에서 8년간 살다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홍콩에 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주재원으로 쭉 상해에서 일했기에 만다린 수준은 일반 중국인보다 잘한다고 자부합니다. 홍콩은 만다린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아이들 교육 또한 좋다고 들어서 홍콩으로 이사오는게 정말 기뻤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나라에 가면 그나라 언어는 꼭 해야한다는 생각에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홍콩에 오면 광동어도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 유치원도 로컬 유치원으로 기대반 부담반으로 알아봤습니다. ...
처음 홍콩에 왔을 때 '홍콩 생활 어때? 살만해?' 라는 질문을 항상 들었던것 같습니다. 첫 한두달은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한다는 긴장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안받는 지에대한 자각도 없이 하루하루 보냈던것 같고, 그 이후부터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까지 겹겹이 더해지면서, '나는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가, 왜 여기까지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아침에 눈을 뜰 때면 항상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출근을 하면서 문득 요즘은 좀 살만하다...
홍콩에 한인 유학생들이 8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열린 한인 대학생 축구리그가 처음으로 열리고, 한인 자원봉사팀도 생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작년 10월까지 집계된 한국 유학생들만 820여명(홍콩대 230명, 과기대 230명, 중문대 200명, 시립대 100명, 이공대 60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앞두고 홍콩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인턴쉽 학생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여행과 취업 두가지 토끼를 쫓는 워킹홀리데이 참여자들도 올해부터 2배이상 늘어날 예정입니다(200명에서 올해부터 500명으로...
1. 흙 주택가 근처에 흙길이 거의 없다. 길가나 건물 옆에도 촘촘히 시멘트로 덮여져 있다. 한국 아파트에서는 동마다 있던 모래사장 놀이터가 홍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놀이터 바닥은 안전하게 쿠션패드가 깔려있다. 흙먼지 날릴 일이 없다. 예쁘고 깔끔해 보인다. 하지만 실외도 실내같다. 자연미가 없다. 흙이 없으니 토끼풀, 강아지풀이 자랄 짜투리 땅도 없다. 네잎클로바 찾으며 시간보내는 일도 없을 것 같다. 흙을 밟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의 건강은 괜찮을까 괜한 걱정도 된다. 2. 대학가...
첫번째가로수 가로수가 없다. 아니 있어도 있다는 느낌이 안들 정도다.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가야 제대로된 가로수를 볼 수 있다. 홍콩공원, 구룡공원에 있는 그런 관광객 사진찍기용 나무들이 아닌 진짜 가로수가 그립다. 출퇴근 길에 밟히는 낙엽이 그립다. 다행이 한국 사람이 가장 많다는 타이쿠싱 아파트에도 가로수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시내에 나가면 택시가 쌩쌩 달리는 차도 옆이 무섭다. 그런 차를 겁내지 않고 잘 걷는 홍콩사람들이 신기하다. 사계절 색깔이 다르...
아내가 최근에 겪은 전화 한 통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피해자 분들이 생길까 하는 우려에 이렇게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원래 홍콩은 한인사회가 좁아서 이런 일은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가능한 모든 추측과 우려를 생각해보니 보이스 피싱이라는 결론과 주위 많는 분들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하여 글을 썼습니다. 다음은 그날의 상황과 오고간 대화들을 정리한 것 입니다. 3월 **일 수요일... 12시 30분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 점심시간을 앞두고 업무에 열중하...
지난 ‘한국 손님 안 반기는 한국 식당들(2014년 2월 26일자 게재)’이란 제목으로 투고한 글에 대해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은 한국 식당 업주들은 한국 손님들이 반갑지 않은 이유들이 분명했습니다. “말이 많다”는 겁니다. 아마 듣기 싫은 말이겠죠. 홍콩 손님들이었으면 안 들어도 되는 말들을 한국손님들에게 들어야 하니 얼마나 짜증났겠습니까. 식당 매출을 떠나서 일을 즐겁게 할수 있게, 또는 짜증하게도 할 수 있는 ‘말 한마디’. 오늘은 말 한마디 대해 생각하게 하는 분이 있어 다시 한 줄 ...
저희 가족은 홍콩에 온지 조금 되갑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계절을 체험하니 이제야 홍콩에 사는 기분이 실감납니다. 처음 남편에게서 이곳으로 발령소식을 들었을 땐, 들떠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홍콩에서 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했습니다. 홍콩 주재원 생활을 했던 가까운 지인들에게 귀동냥으로 들었을 땐 좋은 면이 많이 들렸습니다. 특히 여자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고요. 한국 직장만큼 회식자리가 많지 않고 동문회나 여기저기 모임도 없어서 귀가도 일찍 한다고요. 그리고 ...